오늘의 묵상
말씀 | 눅 22:5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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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5. 4. 16(수) |
로마의 네로 황제 당시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기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자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었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도 예루살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로 유대 각 지역으로 도망가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행8:1).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홀로 두고 모두 살기 위해 도망갑니다(마26:56). 제자 중에 베드로는 멀리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대제사장의 뜰 안에 머물고 있을 때,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56절)”라고 함께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를 알아봅니다. 베드로는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57절)”라고 강하게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에서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베드로도 같이 붙잡혀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 예수를 부인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살기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던 순간에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시인합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시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던 장로들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시인은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죄로 받아들여질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위하여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시인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살기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예수님을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돌이켜 보실 때에, 많은 사람 중에서 자신에게 예수님의 시선을 머무는 것을 느낄 때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61절). 두려움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베드로는 통곡하며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심으로 인하여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리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에 기도하시던 모습과 기도 내용을 보면, 예수님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을 죽이려는 장로들과 대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결과로 모든 인류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베드로가 부인하던 모습과 같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람들을 두러워하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면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우리를 살게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이 이룬 결과는 통곡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인을 통해 부활이 세상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놀라운 작정과 섭리가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도 하나님이시며, 죽이는 것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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