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말씀 | 눅 5: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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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5.2.20(목) |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와 중풍 병자를 고치시는 신유의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병의 치유함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가졌던 나병환자와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나병으로 인해 사회에서 격리된 한 사람을 치유하시고 단절된 삶으로부터 회복시키십니다. 또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시고 병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나병을 고치실 수 있음에도,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었던 그에게 친히 손을 내밀어 만지심으로 치유하셨습니다. 나병환자는 언제나 사람들을 피하여 격리되어야 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며 특별한 의도를 가지시고 율법을 뛰어넘으신 것입니다. 오랫동안 부정한 자로 여겨져 외진 곳에 격리되고 버려진 인생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크신 긍휼과 따스한 사랑의 온기를 전달하고 위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결국 나병환자는 치유를 받고 신체적, 종교적, 사회적 단절로부터 온전한 회복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모든 회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시간과 장소를 지키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기도로 교제하는 자리가 자신이 먼저 있어야 할 자리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역동적인 사역’보다, ‘가시적인 열매’보다 ‘기도의 자리’를 우선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아버지와의 사귐을 더 우선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치유의 능력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할 권세도 있다는 신적 증거를 제시하셨습니다. 입증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입증할 수 있는 그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쉽게 여겨집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와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말이 말하기에는 모두 똑같이 쉽고, 행하기에는 똑같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언급은 반드시 외적 증거로 나타나지 않아도 되기에 더 쉽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것은 외적 증거가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물음은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둘 다 불가능함을 전제로 하고,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의 근원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은 예수님께 인자로서 죄를 용서할 권세가 있다는 증거 ‘너희로 알게 하리라’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치료받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에게 주어진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명령을 따르는 일은 신앙에 바탕을 둔 순종으로써만 가능한 것입니다.
26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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