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거절도 하나님의 응답이다/3월 29일(주일)
    2026-03-28 15:22:03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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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시 22:1-8
    설교일 26.3.29(주일)

    응답이 없으면 문제가 생긴다

    기도하지만 기도가 응답 되지 않아 좌절하고 절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까? 그런 마음으로 시편 22편을 보면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예배자이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기도자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언약을 기초로 기도했지만, 열조들은 다 구원을 얻었지만, 자신의 구원은 먼 거리에 있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하고 있다. 그의 부르짖음의 크기는 밤낮 부르짖을 정도로 컸다. 그런데 응답 되지 않았다. 기도하지만 기도 응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신앙에 문제가 생긴다. 응답이 없으면 기도자에게 문제가 생긴다.

    응답되지 않으면 패배감이 생긴다

    기도가 응답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패배감이 생긴다. 이 버림받았다는 마음과 생각과 느낌은 실제보다, 경험보다,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런 패배감이, 실망감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모든 사건을 보는 시선도 다 파괴된다. 부정적이 되고, 파괴적이 되고, 소극적이 되고, 폐쇄적이 된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사회현실이 아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견디기 힘이 든다. 이처럼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기도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멀어 보이고 조롱은 가까이 보인다

    기도가 응답 되지 않으면 주변의 사람들이 조롱한다. 조롱은 아닐지라도 주변 사람들의 눈과 표정, 말이 다 조롱으로 보이고 조롱으로 들린다. 문제는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태어나면서부터라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쌓였던 하나님과의 신뢰가 자신들을 놀리는 사람들의 말에 의해 그만 흔들리게 되었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어리석음이 우리에게도 있다. 때때로 하나님은 멀어 보이고 인간의 조롱은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기도자일지라도 믿지 않는 사람, 혹은 믿는 사람의 한마디에 하나님과의 모든 신뢰의 관계를 허물어 버리기도 한다. 어리석음의 극치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한 마디에 무너져 버린다. 그러므로 참소자, 고소자를 가까이하면 안 된다. 그들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어지기 때문이다. 조롱에 눈을 머물게 하지 말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둬야 한다.

    왜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그러면 왜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먼저는 우리의 허물이 하나님의 응답을 막았기 때문이다. 2절 하반절에 우리의 허물로 인해 내가 구원으로부터 멀어졌나이다라고 한다. 기도자는 늘 자신의 허물과 죄를 살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시기 때문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방법에 자신을 맞추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시기도 한다. 세 번째로는 "NO"도 하나님의 응답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신다. 거절하심에는 하나님의 더 큰 뜻과 계획이 있다. 오늘은 여기에 조금 집중하고자 한다. 강영우 박사는 그가 쓴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밖에 없는 누나가 꽃다운 나이에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어린 세 동생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갔을 때 나는 통곡하며 하나님께 눈을 고쳐 달라고 기도했었다. 시력만 있으면 누나의 뒤를 이어 공장에 다니면서 소년 가장으로 두 동생과 더불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의 응답은 ‘NO’였다. …………… 만일 그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YES’로 응답해 주셔서 시력을 주셨다면 나는 아마 공장 노동자로, 소년 가장으로서 불확실한 미래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NO’라고 응답하셨고, 당당히 세계를 섬기는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 그는 하나님이 그때 ‘YES’라고 응답하셨다면 자신의 삶에 찬란함과 영광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헬렌켈러의 기도에도 "NO"라고 응답하셨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위대해졌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도 위대한 계획을 가지시고‘NO’라고 응답하신다.

    거절도 하나님의 응답이다

    그런데 결국 24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한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결국은 들으실 것인데,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신의 영혼과 삶을 파괴하는 자리에 가면 안 된다. 시편 기자는 죽을 상황을 모면하지만 예수님은 죽으셨다. 하나님은 아들의 기도에 ‘NO’ 하셨다. ‘NO’도 하나님의 응답이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제물 되는 것이, 죽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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