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다르게 살게 하는 것/5월 14일(목)
    2026-05-13 13:38:44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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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창 41:37~57
    설교일 26. 5. 14일(목)

      요셉은 종으로 살다가, 죄수로 지내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정말 이런 인생 역전은 없습니다. 종이 총리가 되는 일이, 죄수가 총리가 되는 일이 현실에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좀 더 성경적으로 고민해보면 히브리 성경에는 총리라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라고 합니다. ‘내가 너를 애굽의 온 땅 위에 세운다.’ 그렇지만 그가 바로의 이인자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그보다 애굽에 더 높은 사람은 바로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후에 보면 여러 명의 총리가 등장하는 것으로봐서 요셉은 요즘 말로 하면 식량자원 관련 쪽의 2인자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대학으로 따지면 부총장이 2명인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어쨌든 간에 그가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에서 왕외에는 더 높은 자가 없는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호칭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종이었던 사람, 죄수였던 사람이 총리가 되는 일은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바로와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아했다는 것이 더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이 그의 삶과 함께 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심지어 요셉은 바로의 눈에 볼 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고 사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지혜로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쉽게 구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바로의 주변에도 널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하는 사람은 너무 쉽게 구별이 됩니다. 다른 힘으로 사는 사람은 순식간에 구분이 됩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의 총리 등용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내가 누구와 동행하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나님이 드러남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 가치고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르게 살아서 다름이 들어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름이 드러나고 있으신가요?

      요셉은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두 아들의 이름에 요셉이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 지가 나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는 의미고,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을 온통 하나님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므낫세의 이름에도 하나님이, 에브라임의 이름에도 하나님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가 그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해석한 것은 그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위대함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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