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감춰진 탐욕, 왜곡된 정의/5월 2일(토)
    2026-05-02 15:36:53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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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창 34:18~31
    설교일 26. 5. 3일(주일)

      매일 성경에 보면 디나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결정과 행동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삶,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삶,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이 평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투성이고, 괴로움투성이고 문제투성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정은 재앙을 불러오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결정은 죄의 종 노릇하게 합니다. 하나님 없는 결정이 야곱의 가정에도, 세겜 사람들에게도 최악을 선물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 없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성도에게 불편해야 정상입니다. 하나님 없는 신앙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성도가 가져야 하는 정상적인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인식되지 않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최악의 삶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없이 결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정말 누이에 대한 사랑으로 이 학살을 자행했을까? 하는 질문을 갖게 됩니다. 이후에 형제들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자신들이 처하게 된 위기만 눈에 들어오고, 누이에 대한 배려는 크게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도 그렇고, 형제들도 비슷합니다.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학살과 약탈이라는 원수 갚음의 방법은 본질을 잃어버리게 하는 방법들입니다. 방법이 합당하지 않으면 본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원수를 학살과 약탈이라는 방식으로 갚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야 할 누이에 대한 배려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방법을 잘못 사용한다는 것은 본질을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정의를 위한 결정과 행동일지라도 그것이 불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이미 정의는 없는 것이 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 행해지는 많은 정의의 모습입니다. 정의를 위한 행동들이 불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그들이, 그 공동체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옳은 일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하는 수단과 방법도 옳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정의, 십자가가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닙니다. 아무리 목적이 옳아도 수단과 방법이 옳지 않으면 옳지 않은 길입니다. 옳지 않은 길에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옳지 않은 길에서 위로를 얻을 수 없습니다. 바르지 않는 길에서 회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에서 그 누구도 위로나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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