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말씀 | 야고보서 2:1~13 |
|---|---|
| 설교일 | 26. 10. 18일(주일) |
야고보는 교회에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합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여기서 ‘차별하다’의 의미는 ‘외모로 판단하다’, ‘편애하다’라는 의미입니다. 1절 전반절로 봤을 때 믿음의 사람들은 차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1절을 새번역으로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나올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고 있다면 나오면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들에게서는 차별, 특히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스러워야 합니다. 모두가 이뻐 보여야 합니다. 모두가 좋아 보여야 합니다. 얼굴에 믿음 없음이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절을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하고 말하면” 우리는 이런 일을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이런 상황을 특별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조건 차별하면 안 될까요? 기본적으로는 차별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구분은 해야 합니다. 그 차별이 말씀을 어기는 것인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삶에서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구분을, 구별, 분별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어기게 되고,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는 일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별은 악한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이들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들이 부자일 가능성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야고보가 이렇게 편지를 썼다는 것은 자신들도 가난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했던 것입니다. 원래 같은 편이 가장 위험합니다. 목사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는 목사입니다. 가족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도 가족입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첨부 파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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