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방언과 예언의 유익/6월 22일(월)
    2026-06-22 00:24:43
    최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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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고전 14:1-19
    설교일 26.06.22.(월)

    본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배 때 자기 은사를 과시하려고 방언을 남발하는 바람에 예배가 무질서하게 되었다고 하고, 바울은 사랑의 원리를 따라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권하는 내용입니다.

    고전 14:1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새번역)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라고 하면서, 그 바탕에는 반드시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개인의 영적인 우월감을 자랑하는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깊은 영적 소통을 나누는 신비롭고 귀한 은사입니다. 나의 지성과 생각을 뛰어넘어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기도의 도구입니다. 바울은 18절에서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했을 만큼 방언의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방언도 통역, 통변이 없으면, 곁에 있는 다른 성도들은 그 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언은 미래의 일을 맞추는 점술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預言) 성도들에게 쉽고 분명하게 대언하는 것을 뜻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예언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찌르고, 위로하고, 권면하여 그들을 영적으로 세워 주는 것입니다.

    은사 자체에 우열은 없지만,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을 더 강조한 이유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개인의 덕을 세우는 방언보다, 모두가 함께 듣고 깨달아 변화되는 예언이 공동체에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에게만 유익한 방언보다 공동체 전체를 유익하게 하는 예언이 더 훌륭하고 추구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피리나 거문고가 구별된 소리를 내지 못하면 곡조를 알 수 없고, 나팔이 어떤 신호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리를 낸다면 군사들은 전투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공적 예배에서는 회중에게 뜻이 선명히 전달되도록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으로 기도하되 마음(지성)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그 영적 경험은 인격적인 변화나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 물질, 재능, 그리고 영적인 은사는 자신을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곁에 있는 연약한 형제자매를 위로하고, 권면하고, 붙들어 주어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가라고 주신 책임입니다. 나의 만족과 유익을 구하기보다 형제자매의 유익을 먼저 구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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