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이용이 아니라 순종이다/3월 12일(목)
    2026-03-11 12:00:28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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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요 12:12~19
    설교일 26. 3. 12일(목)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15절입니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땅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스가랴 99절의 예언대로 그대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로마의 왕과는 다른 겸손과 섬김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전쟁의 왕, 파괴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이 땅에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거대한 말이 아닌, 화려한 수레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큰 무리가 종려나무를 가지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스가랴서의 예언도 영적 구원의 메시야가 아닌, 정치적인 메시야로 해석했습니다. 해석도 자신들의 뜻대로 했습니다.

      종려나무는 승리의 상징이고, ‘호산나구원하소서. 기도합니다.’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호칭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 정치적인 메시야로 보기에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라던 왕은 잡혀가는 어린 양 같은, 겸손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강력한 정치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렇게 만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는 말은 당시 먼 거리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는 믿음의 형제들, 동료들을 향한 축복의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의 칭호로 봤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명한 랍비가 예루살렘에 오면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상당히 정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억압에서 해방하시는 것은 맞지만 정치적인 억압이 아니라 죄의 억압에서 해방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해석해야 합니다. 교회나 성도의 삶도 말씀으로만 해석해야 합니다. 정치적이나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불의에는 저항해야 합니다.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생애나 말씀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인 이득을 위해서 해석하는 일은, 그리고 따르고 순종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오염되면 믿음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오염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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