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눈물의 차이/3월 8일(주일)
    2026-03-07 19:01:14
    남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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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요 11:28~37
    설교일 26. 3. 8일(주일)

      33절과 35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비통히 여기시고는 헬라어로 엠브리마오마이입니다. 이 단어는 경고’, ‘책망’, ‘분노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슬퍼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분노의 감정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것을 믿지 못하고 우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분노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님은 분노하실지도 모릅니다. 신뢰하지 못하는,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우리를 보시면서 화가 나실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특별히 마르다와 마리아가 자신의 형제인 나사로를 예수님께 사랑하시는 자로 소개했습니다. 특별한 관계인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을 부활이요 생명으로는 믿지 못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에서 예수님의 눈물과 주변에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우는 눈물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죽음 아래에 있는 사람들,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슬퍼합니다. 죽음이 가져온 단절로 인해서 슬퍼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죽음에 절망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죽음으로 인해서 좌절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이나, 나사로의 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절망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옆에 두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죽음 아래서, 죽음의 영향력 아래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부활과 영생의 믿음 아래서 살아야 합니다. 죽음을 단절로 보는 것을 넘어서 죽음을 부활로, 죽음을 영생으로 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그리스도인의 눈물은, 불신자의 눈물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죽음에서 부활을, 영생을 선물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을 이긴 자로서 생명을 전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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