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말씀 | 시 119:65~80 |
|---|---|
| 설교일 | 25. 5. 5일(월) |
먼저 67절과 7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먼저 67절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67절과 71절의 요지는 고난이 성도에게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전혀 유익이 없을 것 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고난이 성도에게 유익인 것은 고난 때문에 말씀을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 인생의 쓴맛을 보기 전에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인생의 쓴맛을 봐야 들리지 않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고난을 통해 못된 자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무너지지 않고는 말씀이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고난 때문에 말씀을 지키게 되고, 고난 때문에 말씀을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난 당하는 사람들이 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더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고난 그렇게 쉽게 해석이 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난은 우리를 말씀 가까이로 인도하는 것은 맞습니다. 고난에는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단순히, 힘들고 괴로운 것은 아닙니다. 고난에 몸을 담궈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신비도 있고, 능력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의 경우 그가 겪은 고난으로 인해서 말씀을 지키게 되었고, 말씀을 빼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고난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여러분에게 일어났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죄를 짓기도 하고, 고난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마귀의 종이 되기도 하고, 고난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합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구원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이 비밀을 안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자처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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